역사적인 천연 약재 의료용 약이란 진단에 도움이 되거나 증상을 줄여 주거나 질병의 원인을 치료하거나 회복을 도와주는 의료 활동에 쓰이는 모든 물질을 일컫는 말이다.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약물요법은 기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바탕을 두고 있었다. 약사들은 식물의 일부를 선택해 빵거나 녹이고 화학물질로 처리하여 약의 활성 성분을 추출하는 일을 시작했다. 약을 가동하는 목적은 2가지였다. 첫째,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약효를 보다 더 강하게 해 특정 질병이나 증상에 효과가 있도록 만든다. 둘째, 약을 좀 더 편하고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환약으로 만들거나 가공해 하나씩 따로 포장한다. 수백 년 동안 천연 약재 제조 교재는 고대의 식물지였다. 처음으로 약전이란 의사들을 위한 안내서로, 국가나 도시나 기구에서 공인한 효과가 입.. 공중보건의 시작 18세기 말,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으로 비위생적이고 지나치게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와 도시가 생겨났다. 인구는 많고 영양 상태는 나빴기 때문에 물과 음식물, 공기를 오염시키는 병원체로 인해 생기는 콜레라, 장티푸스, 천연두, 결핵, 폐렴과 같은 전염병이 널리 퍼졌다.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노(1813~1858)가 1854년에 런던을 휩쓴 콜레라의 진원지가 물 펌프였음을 알아낸 뒤부터 깨끗한 물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병원체와 소독법의 발견은 청결을 보다 더 강조하게끔 했다. 가난과 질병의 관계가 점차 분명해진 것이다. 1848년 영국공증보건법이 제정되면서 깨끗한 물과 적절한 방역 같은 보건 정책을 국가가 나서서 시행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구루병에서 알 수 있듯이 음식 속의 비타.. 진단법의 발전 2편, 혈액검사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17세기 중반부터 조직과 세포라는 새로운 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이 미세구조에 이름을 붙이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마르첼로 말피기(1628~1694)는 볼로냐에서 동물과 사람의 미세구조를 연구했다. 그는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모세혈관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하비가 제안한 혈액순환론의 혈액순환 경로를 완성하는 없적이었다. 독일의 자연철학자 요하네스 페터 뮐러(1801~1858)는 몸의 기능을 연구하는 생리학자이자 병든 조직과 세포를 미시적으로 연구하는 세포병리학의 선구자였다. 그의 제자 테오도어 슈반(1810~1882)은 세포가 생명의 기본단위고 모든 생물은 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역시 뮐러의 제자인 야코프 헨레(1809~1885)는 커다란 기관뿐만 아.. 진단법의 발전 1편, 내시경, 청진기 많은 치료용 의료 도구는 역사가 길다. 하지만 검사와 진단에 쓰이는 도구 가운데에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도 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체액설이 힘을 잃으면서, 의사들은 몸속의 장기와 체계가 잘못됙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병이 생긴다고 믿게 되었다. 의사는 질병의 종류를 알려고, 환자를 검사하는 임상 진단에 필요한 기술과 도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612년에 이탈리아의 과학자 산토리오 산토리오(1561~1636)는 체온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체온을 재는 일이 필요없다고 판단해 1880년대까지 체온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정확히 1분을 잴 수 있는 시계를 1707년에 영국의 내과 의사 존 플로이어(1649~1734)가 발명했지만, 19세기까지 보급되지 않았다. .. 병원체와 질병의 원인 발견 의사와 과학자들은 19세기에 병원체가 많은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믿음이 그때까지 믿어 온 체액설을 대체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세균과 여러 미생물이 감염성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동물의 질병이며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탄저병을 연구하던 독일 의사 로베르트 코흐(1843~1910)는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을 1876년에 처음으로 분리해 냈다. 1888년에 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원 에밀 루(1863~1933)는 디프테리아균과 이 병균의 독성 부산물인 독소를 연구했다. 그는 병균이 아니라 독소가 디프테리아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보다 일찍,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는 우두의 고름으로 천연두를 예방하는 종두법을 소개했다. .. 의학의 발전과 임상 의술 르네상스에 시작된 연구와 실험정신은 의학적 이해와 기술에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이 일상적인 진료를 담당하는 일반 의사에게 전파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7세기의 유럽에서는 주로 칼이나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과 부항요법 같은 전통적인 치료법이 이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앙브루아즈 파레와 같은 과학자들이 고안한 새로운 진료 방법이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영국의 토머스 시드넘(1624~1689)은, 의사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지 이론을 시험하거나 복잡한 수술 또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시드넘의 사상느 레이덴대학교의 교수이자 네덜란드의 의사였던 헤르만 부르하페(1668~1738)의 칭송을 받았다. 부르하페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부검에 학생들을.. 르네상스와 의학의 혁명 14세기 무렵부터 이탈리아에서 예술과 과학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해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바로 르네상스다. 고전 지식의 재발견과 전통에 대한 비판이 함께 시작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예로 들면, 그는 우주를 망원경으로 관찰한 뒤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새로운 탐구 정신에 힘입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같은 사람들이 이전에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인체 해부를 했고, 몸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레알도 콜롬보, 안드레아 체살피노, 혈액이 심장에 의해 온몸을 순환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영국의 윌리엄 하비같은 과학자들의 연구가 뒤따랐다. 하비의 간단한 실험은, 혈액은 음식물에서 만들어져 조직에서 흡수된다는 갈레노스의 가르침이.. 마술과 미신 5세기에서 15세기 사이의 유럽에서 과학, 특히 의학의 발전은 거의 없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몇몇 의과대학만이 번창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탈리아의 살레노스, 프랑스의 몽펠리에(1167년 경), 이탈리아의 볼로냐(1158년)와 파도바(1222년)가 유명하다. 그러나 일상적인 의료는 약초와 마술과 종교의식이 뒤범벅된 상태였다. 이 시대의 초기 의학 사상은 갈레노스의 프네우마 이론과 체액설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차차 질병이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단죄라는 크리스트료 사상으로 바뀌어 갔다. 육체는 죽은 다음의 영혼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진단과 치료는 대부분 미신, 종교적 상징, 치유성인에게 드리는 기도에 기대고 있었다. 수녀원,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공공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지역도 있었.. 이전 1 2 3 4 5 다음